그럴듯한 詩,
그럴듯한 寫眞,
그럴듯한 關係,
그럴듯한 生, 어느 것 하나 부끄럽지 않은 게 있던가.
어떤 의미로 사진을 담고, 어떤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요즘들어언어의 부박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펴든 10년도 더 지난 낡은 시집,
시집 속 시들에게 권태롭게 시선을 던져주다가 실수로 여러 장을 넘겨 펼쳐진 맨 앞장.
낯선 필체.
‘1996,10,26’ 외에는 그어떤상황도 기억 속에 없다.
물청소를 하고 난 뒤의 복도처럼 기억은 깨끗하고 조용하기만 했다.
복학, 시습작, 남독, 써클활동. 지금은 기억의 파편들로 남아 있는 이런것들이얽히고 얽혀 상황을 만들어 냈으리라.
지금은 화분처럼 무표정하게 외면하며 체념하고 있지만 온전한 詩心으로 신춘문예의 계절이면
어김없이 진저리를 치며, 시인이 되겠다던 한 때였으리라.
그러면서 이 순간, 저 글귀들에서 쉽게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내 생의 어두운 우리에 갇혀 있던
외로운 짐승 하나가 뒤척였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그 짐승을 요령껏 감추고 아름답게 살 수 있으리란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詩. 흔적과 얼룩만 남고 사무치는 생을 살아왔지만 이젠 조끔씩 일으켜 세우고 싶다.
내 경박한 언어나마 언제고 ‘그럴듯한 詩’로 ‘세상 살아가는 것이 뿌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맥없이 늙어가기 전에...
(이재훈 시인에게 감사하며...)